우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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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와 인생 II (딸들의 옷)

사람의 생각은 변화하고 발전 보완하며 강물처럼 흐르기 마련이다.

인생 경험과 반추에 따라, 그게 바로 성장이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옛 생각을 문자 그대로 똑같이 유지하는 이런 일관성이란 정체된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지난 시절 쓴 <액자와 인생> 이라는 멋진 글에 대해
이런 의미에서 추가된 최근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액자와 인생>
http://woochangheon.com/bbs/board.php?bo_table=art_essay&wr_id=38

물론 그건 매우 공감이 가는 청년다운 열정적인 생각이긴 한데,
요즘의 내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나는 요즘 액자라는 것이 하나의 옷이고 무해한 격식이며 사회적 보호장치라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글에서는 심지어 그림을 여성에 비유하면서,
‘벌거벗은 여자가 훨씬 멋있고 예쁘다’ 라는 이상한 말도 하고 있다.

물론 가식없는 실체가 훨씬 정직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말은 악의적으로 왜곡되어 들릴 수도 있고,

혹은 이를테면 이 세상은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닌 이상,
만약에 내 딸들이 벌거벗은 이쁜 모습으로 나다닌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 정도는 생각해봐야만 하겠다.

그림이란 틀림없이 나에게는 딸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 에세이의 푸르른 열정이 어딘가 지나치게 순수하다고 느낀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바로 복잡다변한 사회라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에
(포도 잎사귀로 거기만 살짝 가린 아담과 이브 시대와는 달리) 우리는 옷이란 것을 입고 있다.

추워서 또는 안전을 위해서만 입는 것이 아니다.

미친 놈이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또는 게으르거나 무시당해도 좋을 예의없는 야만인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는 정중한 빈틈없는 옷차림으로 무장하게 되지 않았던가?

그게 바로 정장의 기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딸을 세상에 내보내려면 바로 이런 정장으로 빈틈없이 완전 무장시키고서야
내보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거나 쉽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게끔 말이다.

또 장소나 세월과 환경의 변천 속에서 여행하면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치거나 상해를 입지 않게끔 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예전에 내가 그토록 많은 그림들을 소장자들에게 보내주면서
제대로 옷도 입히지 않고 발가벗긴 채 보냈다는 것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

훌륭한 액자와 튼튼한 궤짝이야말로 먼 길 떠나는 내 딸들에게
그 창조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던 것을.

딸들의 옷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자.
 
오늘날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이상한 주장으로는,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옷차림을 바꿀 필요는 없다,
마음껏 벗고 다니라고들 하는데, 정말 개탄할 노릇이다.

아니, 이 세상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고
순수하고 착한 남성들만 사는 곳도 아닌데,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특히 범죄적 남성의 심리를 어찌 그리 잘 알아서 그런 주장을 한단 말인가?

도데체 무슨 근거인가?
일부 페미니스트 너희 딸들은 그럼 아랫도리를 다 벗은 차림으로 거리를 나다니게 둔단 말인가?

정말 그래도 좋은가?

호르몬과 본능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일부 의지박약의 성폭력 남성들에게
벗은 다리나 두꺼운 청바지를 입은 다리가 다 똑같아 보인다고 단언할 수 있나?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첫째 오류는 여성이 남성심리를 (그것도 범죄적 남성의 심리를)
함부로 규정하고 넘겨짚고 있다.

둘째 오류는 여성의 성적 매력, 섹시함이란 근본적으로
시각적으로 작용하는 종족번성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생태적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모든 성숙한 암컷 동물은 수컷 사회에 신호를 보내게 된다.
자손 번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호이다.

그 신호는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신호들로 이루어진다.
원숭이들이나 사자들이나 고양이들이나 벌들의 사회만 봐도 빤히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와 다리의 볼륨과 곡선의 아름다움이며
피부색, 향기, 몸짓과 목소리 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벗고 있다면 어떨까?

옷차림은 바로 사회적 신호이며,
절대로 오판할 구실이 되는 신호를 저도모르게 이성에게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랑하는 딸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중대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양갓집 규수들은 발목을 보이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겼으며,
그들의 꽁꽁 싸맨 옷차림은 바로 범접하기 어려운 고결한 기품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우리 귀한 딸들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백번 양보해서 성폭력 범죄자들이 정말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과 청바지 입은 여성을 구분하지 않으며,
옷을 조신하게 밀봉해서 입는 것과 야하게 벗은듯이 입는 것의 범행의 차이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내 딸이라면 마땅히 조심하라, 물론 옷차림은 방어적으로 입으라고 가르칠 것이다.

(심지어 나는 못생겨 보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고까지 가르치고 싶기도 하다.
이 욕망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예뻐 보인다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셈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섹시하게 입는 것이 본의 아니게 나쁜 남성들에게
어떤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셈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단순히 예뻐보이기 위해 옷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건 딸에게 꼭 해주어야 할 의무가 아닐까?

얼마전에 이런 뉴스가 나왔다.

미국의 어떤 대학교에서 핫팬츠를 입고 레포트를 발표하는 학생을 교수가 나무랬다.
그러자 학생은 의복의 자유를 주장하며 다음번 과제를 비키니를 입고 발표했으며,
이는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기사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득세하고 있는 요즘 여론의 갈채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나는 이런 일에 우려를 가지고 있다.

옷차림은 사회적 표지이며, 대체로 나 자신이 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예의나 정중함에 더 가까운, 어쩌면 불편한 사회적 장치이다.

즉 나쁘게 보면 문명인의 번거로운 규칙이고 따분한 의식 같은 것이다.

거기엔 장중한 외교관 사회나 음악회나 궁정이나 하다못해 조금 괜찮은 레스토랑에서까지도 통용되는
무해한 긍지와 차별성을 주는 허례허식이고,

다른 이를 정중히 배려함으로써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예’라고 하는
우리 선비사회나 서구 상류사회의 진지함이 녹아들어있다.

즉 서로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켜주는 울타리이며 사회적 안전장치인 것이다.
그건 한낱 장식이거나 귀찮은 구닥다리 관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고보면 매우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또는 세상에 나아가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진지한 자세와 태도 또는 매너를 담는 하나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관을 정제하는 것은 단순히 멋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세를 바로 하고 일에 덤벼드는 기본이고,

각종 일터와 작업실이나 전쟁터나 그 비슷한 목숨을 건 현장에,
혹은 일생의 결전이 달려있는 이런저런 대쉬와 프로포즈의 순간은 물론
온갖 형태의 도전과 모험과 발표의 순간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시말해 정장을 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의관이 우리를 강제하는 것이거나,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자신의 전부를 건 진지한 태도는 그에 걸맞는 복장과 자세를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이 극명한 태도는 일제시대 의열단 독립투사들에게서 매우 정확하게 엿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독립전쟁을 위해 폭탄과 총을 양복 웃저고리에 숨긴 그들은,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신사의 복장을 유지했던 것이다.

당장에 관 속으로 들어가도 손색이 없도록, 푸르른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청년다운 패기와 열정의 화신으로, 그러나 물론 멋지고 산뜻한 정장으로 중무장하고,
웃으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까의 비키니 여학생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옷차림은 사회적 장치이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그 비키니 복장이 (핫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어울리는가?

아니, 그 과제를 있는 그대로 듣고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뉴스 아나운서처럼 진지하게 빈틈없이 단정한 옷차림을 하는 편이 훨씬
그 내용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알아듣게끔 전달하기 알맞은 복장이 아닐까?

정장은 그 진지함과 정중함에서 분명히 전투적으로 최선을 다해 행동에 나선 사람의 것인 반면
비키니나 핫팬츠나 하의실종은 어떤가?

예쁘고 유혹적이겠지만 태만하고 쓸데없이 시선을 분산시키며
또 공공장소에 어울리는 격식을 포기한 매우 사적인 복장이라는 것은 틀림없지 않나?

그런 옷차림은 모든 전투적 행동과 진지한 최선이란 것을 유감없이 걷어치우고
휴가지의 해변에 누워 한가롭게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할 때나 어울리는 것이다. 

나도 그걸 좋아한다.

그것도 우리 삶에는 꼭 필요하다.
바로 그럴 줄 아는 사람만이 전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 자격이 있다.

그런데 강의실은 해변이 아닌 것이다.

물론 교수가 딸에게 하듯이 이런 우려를 자상하게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왜 남 좋은 일을 하는가?

그 교실의 남학생들은 기뻐하며 열광했을 것이 아닌가?

그들도 자기 여자친구가 옷차림의 자유를 주장하며 강의실에서 벌거벗었다고 하면 화를 냈으리라.

그건 모든 남성이 자기 가족 여성을 지키려고 애쓰기 때문이며,
물론 행여라도 구경거리로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 우창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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